1. 역사의 시작
현대차가 출시한 준대형 세단이자 빅히트 대표 모델이다. 현대차 3대 자동차 라인업은 엘란트라, 쏘나타와 함께 1986년 첫 출시 이후 이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쏘나타, 포트, 마이티와 함께 장수 모델 중 하나다.
IG는 2016년 출시 이후 쏘나타를 제치고 국내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동급 사상 국산차 중 최고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1세대, 2세대 그랜저와 동일한 미쓰비시 2세대, 3세대 데보네어는 갤랑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Y2, Y3 쏘나타도 갤랑과 플랫폼을 공유한다. 그래서 쏘나타와 그랜저는 플랫폼을 공유하는 차다.
현대차는 3세대 XG부터 자체 쏘나타 플랫폼을 공유하며 이어가고 있다.
<데보네어>
<갤랑>
2. 부자아빠의 상징-그랜저
그랜저 1세대와 2세대인 미쓰비시 데보네어는 미쓰비시와 현대차가 공동 개발했다.
공동개발로 파워트레인 등 주요 부품은 모두 미쓰비시가 설계했고, 현대차는 외관 패널과 인테리어 디자인 부분만 참여했다. 따라서 미쓰비시의 해외전개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대차는 이를 단순한 배지 프로젝트로 표현하고 있다. 기술과 경험이 많은 미쓰비시는 독자 개발 대신 현대차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는데, 일본에서는 대형차가 인기가 없어 판매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형차 판매는 규제, 자동차세, 도로폭, 주차장 크기 등 여러 어려움으로 좋지 않고, 다른 대형차 모델도 번번이 실패하며 미쓰비시 1세대가 고전하고 있다. 이에 미쓰비시는 데보네어의 한국시장 진출을 추진했으나 당시 국내 규제로 직접 판매가 불가능해 공동개발과 생산 형태로 현대차를 도입했다. 당시 경제성장으로 자가용 수요가 급증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 현대차는 미쓰비시의 제안에 적극 호응했고 현대차는 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는 대가로 디자인 영향력을 일부 행사했다.
[1세대 그랜저]
1세대와 2세대는 견고한 국산 고급 세단과 현대 플래그십 세단으로 국내 부유층과 상류층이 타는 고급차의 축소판으로 유명하다. 부자 범죄를 주도한 지존파마저 그랜저 차주를 먼저 겨냥해었다. 당시와 지금의 웅장한 이미지는 다르다. 지금은 월별 국내 자동차 판매 1위의 침투율이 높아 도로에서 인기가 높은 고급 승용차로 떠올랐지만 적어도 1990년대 이전에는 30평대 아파트 시세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고급 승용차로 오늘날의 벤틀리나 롤스로이스와 비슷했다. 당시 초등학생은 그랜저가 골목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먼저 "그랜저!"라고 외쳤다.챔피언처럼 노는 문화가 있는데, 한 번 만져볼 수 있는 소중한 고급 세단이다.
3. 대형세단의 고인물 하지만 명품같은 세단
현대와 미쓰비시는 해외 대형 세단에 버금가는 차종의 필요성을 느끼고 현대 에쿠스=미쓰비시 플래디아를 새로운 플래그십 풀사이즈 대형 세단으로 개발하기로 하면서 기존 그랜저의 위상은 더욱 모호해졌다. 초기 현대와 미쓰비시는 그랜저 생산을 중단하고 에쿠스=프로디를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로 출시했으며 왕조는 사실상 그랜저급을 계승해 수명을 연장하고 쏘나타의 고급형 마사를 이어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마사는 참담한 실패로 현대차는 마사의 생산을 조기에 중단하고 대신 전통적인 인지도인 그랜저를 계승하기로 하고 3세대 그랜저XG를 개발해 1998년 출시했다. XG는 에쿠스 출시를 앞두고 위치를 바꿔 오너 델리반 칼로 등급을 다소 낮췄다. 그랜저XG는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합작 없이 독자 개발한 최초의 그랜저다. 이처럼 그랜저XG는 당초 현대차의 그랜저 생산을 중단시키고 에쿠스, 왕조, 마사, 쏘나타, 아반떼, 엑센트로 라인업을 재조정하려 했으나 점차 회복하며 브랜드의 명맥을 잇는 기구한 운명에서 출발해 출시 직후 에쿠스가 출시되면서 그랜저XG는 과거 1, 2세대 플래그십 시대의 위상을 잃었다. 그러나 그랜저XG는 마샤나다이너스티와 달리 1세대와 2세대 그랜저보다 많이 판매되며 그랜저라는 브랜드를 더욱 공고히 했다. 또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차종이어서 수출 규제도 철폐돼 북미에서도 당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2022년 신형 그랜처 출시. 세상은 변하고 차도 변했다. 그 네임밸류만 유지될 뿐이다.
더 올~~~~뉴 그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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